[칼럼] 비젼 없는 문화회관의 9주년, 문화는 어디에?

시카고한인문화회관은 2011년 시카고 한인동포들의 모금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창립 9년의 문화회관은 각종 문화강좌, 전시회, 음악회, 동호회 등 활발한 활동이 있는 명실공히 한인사회의 문화 중심지이자 허브이다. 그러나 고령의 조직구성, 전문가 부재, 재정 등 구조적 문제가 문화회관의 역량을 제한하고 있다. 지난 개관기념식이 그 단면을 보여준다.

사흘 전(630) 동 기관의 제2 행사장에서 ‘9주년 기념식 및 이사장 이취임식’이 열렸다. 창립을 기념하며 미래를 향한 비젼을 제시하는 행사의 본래 성격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한국문화의 멋과 찬란함도, 아름다운 우리말의 가치도, 차세대도, 미래를 향한 사업도 보이지 않았다.

100여 명 참석자 가운데 미국인은 단 5, 40대 이하는 서너 명,  대다수가 60대 이상의 1세 한인이었다. 2세는 한두 명뿐이었다. 참석자의 연령분포는 이 기관이 젊은 세대들과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지 반증한다.  2세 및 차세대는 차치하더라도 1.5세 성인의 참여도 저조하다. 고령화된 문화회관의 임원단은 수년째 젊은 세대의 지속적인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시카고 한인사회가 점차 쇠락하는 가운데 30년 후 문화회관이 계속 존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참석자의 대부분은 60대 이상)

시카고한인문화회관의 9주년 기념식 및 이사장 이취임식을 살펴보면 문화회관이 직면한 문제를 엿볼 수 있다.

엉성하게 기획된 문화회관의 잔치였다.

행사 시작 전 객석 뒤편에서 문화회관의 풍물학교가 길놀이로 풍물 마당을 벌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길을 주지도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내빈 소개로 시작된 기념식. 패트릭 호커 윌링 시장 내외와 나탈리 바톨리 시카고어린이박물관 부회장, 이성배 한인회장 당선인 외에 귀빈은 없었다. 김영석 주시카고총영사도 자리하지 않았으며, 정치인도 한인2세 공직자도 없었다. 문화회관의 9주년을 축하하는 자리가 참으로 초라했다. (할리 김 레익카운티 재무관은 소개 없이 참석했다.)

김윤태 문화회관 회장은 환영사에서 감사의 인사만 전했을 뿐 문화회관이 나아갈 방향이나 비젼, 사업 등은 언급조차 안했다. 놀라운 개관 기념 스피치이다. 70대 전후의 ‘비문화 전문가’ 출신의 고령 임원 중심으로 돌아가는 문화회관이 표류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문화 및 예술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되었고 비젼과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빈약하다.


(내빈석)

김윤태 회장은 영어로 환영사를 전했고, 기조연설자도 20분간 영어로 연설을 했으며, 신임 이사장 또한 취임사를 우리말로 하지 않았다. 행사 참석자의 95%가 한국어권 1세였고 미국인은 단 5명뿐. 영어권 참석자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영어는 간단명료하게 병용하면 될 일이었다. 문화회관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이민사회에서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기관이 아닌가? 언어와 민족성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과거 일제 민족말살정책의 예를 통해 잘 알 것이다.

순서지에는 서이탁 한인회장이라고 적혀있었지만 축사는 이성배 당시 차기 한인회장 당선인이 전했다. 이 당선인은 한인회장이라고 소개됐다. 이성배 당선인은 축사를 통해 한인회가 문화회관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전했다.

총영사의 축사 대독을 담당한 시카고총영사관의 영사는 늦게 도착해 대독을 하지 못하고 소개 인사만 했다. 주최측은 참석시간에 대한 소통의 오류가 있었다고 알렸다.

20분에 걸친 기조연설은 문화와 연관이 없는 내용이었다. 연설자가 안젤라 오 변호사라는 것 외에 아무런 소개 없이 소수계 정체성, 인종갈등에 대한 강연이 영어로 이어졌다. 대다수의 1세 참석자들은 집중력을 잃었고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강연의 논조도 방대한 주제를 명쾌하게 풀어내지 못했다. 이해되지 않는 강연자 섭외이자 행사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주제 선택이었다.


(기조연설자, 안젤라 오. 참석자 대부분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문화의 장이어야 할 기념식순에서 공식 연주는 단 하나, 한인문화회관합창단의 남성앙상블의 무대였다. 그것도 소속 기관의 기념식에 합창단은 전원이 아닌 반만 나와 빈축을 샀다.

시카고 한인사회에서 문화를 대표하는 공공기관의 9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분명 규모 있고 찬란한 문화예술 공연을 기대했을 것이다. 현실은 빈약한 공연 프로그램으로 그 반대였다.

이날 동 기관 이사장의 이취임식도 함께 열렸다. 장기남 이사장은 이임사에서 투병을 통해 얻은 새 삶과 성원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은 그의 건강과 쾌유를 위해 빌었다.

임문상 신임 이사장은 영어로 취임사를 전했다. 임 이사장은 문화는 쉼을 준다.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은 우리의 꿈을 이루게한다고 말했다. 문화회관의 사업과 비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임문상 신임 이사장)

동포들의 손으로 건립된 기관인 시카고한인문화회관의 9주년 기념식을 취재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시카고한인문화회관 기념식은 한마디로 찬란한 한국문화와 동떨어진 행사였다. 문화적 비젼을 제시하고, 야심차게 사업계획을 천명하며, 기대와 참여, 후원을 유도했어야 했다. 이는 지극히 보편적인 생각이다.

문화, 영어로 ‘culture’라는 단어는 경작, 재배, 배양 등의 뜻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렇듯 문화회관은 이민사회에서 한민족의 아름다운 문화를 잘 일구어 아름답게 꽃 피우고 소출을 내야하는 시대적 사명을 갖고 있다.

문화회관이 지역 ‘문화센터’ 역할의 순기능도 갖고 있지만 한국문화를 보존, 계승하며 역량을 확대하는 사명을 위해선 인력구조 개선과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세대와 단절되며, 점차 쇠락하는 한인경제와 문화회관은 같은 길을 걷게될 것이다.

뉴스매거진은 앞으로 기획 시리즈를 통해 문화회관의 여러 이슈를 분석,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보다 공정한 저널리즘을 위해 문화회관 임원단과의 인터뷰도 예정되어 있다.

<박원정 PD>

** <영상 칼럼> 문화회관 9주년 기념식 하이라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