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설 곳 없는 시카고

시카고 한인들의 모금으로 제작된 소녀상은 아직도 세워지지 못한 채 모처에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시카고엔 소녀상이 언제 세워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 궁극적으로 왜 세워야 할까요? 박원정 PD입니다.

[프롤로그 영상]

2014년 7월, 당시 제31대 시카고 한인회를 주축으로 시카고 평화의 소녀상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5만 여 달러의 기금이 조성됐고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가 시카고에 세울 동상을 제작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도 지난 2015년 힘을 보태기 위해 시카고를 찾았습니다. 뉴스매거진과의 인터뷰입니다.

[질문: 시카고에 소녀상이 세워지거든요. (소감이) 어떠세요?]
[김복동 할머니: 글쎄요, 여러분들이 타국에서 까지 이렇게 힘을 써서 소녀상을 세워준다니까 속으로는 기쁘고, 한 쪽으로는 일본이 진작에 사죄를 했더라면 우리 교민들이 방방곡곡에서 힘을 써서 저래 안 할텐데 (일본이 사죄에) 아직까지 힘을 안 쏟고 있으니까 열열하게 타국에서도 이렇게 힘을 들여서 써주니까 너무나 고맙고 마음이 뭐라 할까요, 착잡합니다.]

그러나…5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소녀상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설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루시 백 당시 소녀상건립추진위원장이 언론에 제공한 사진. 이미 수년 전 제작돼 시카고에 도착한 소녀상은 포장이 뜯기지 않은 채 모처에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널리 호응을 받았던 공개 모금과 달리 소녀상 건립 사업은 조용히 진행되었고,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미국 시정부들이 소녀상을 정치적 사안으로 인식해 보일 부정적인 반응과 일본계의 방해를 과소평가했습니다.

소녀상의 명분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설득하며, 지역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미비했습니다. 건립위원들 마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답보상태에 있다 결국 사업의 동력을 잃었습니다.

제33대 한인회에 이르러 ‘소녀상건립위원회’를 구성해 추진하고 있으나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김호정 질문 – 동포들의 후원금으로 제작된 소녀상이 아직 건립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어떤 상황이며 한인회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서이탁 한인회장 – 이 부분 또한 저희 33대에서 조용히 조심스럽게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인데요, 많은 부분들을 말씀을 드리지 못함에 양해를 부탁드리고…]

과연 소녀상 건립이 조용히 비밀리에 진행돼야 할 일인가?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바 현재 건립위원회는 시카고 지역의 한 한인교회에 소녀상 설치를 제안하 상태. 그러나 이 안 역시 한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카고에서는 위안부 이슈와 관련해 한인들의 대외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여성 핫라인은 위안부 피해자 강연 행사룰 열고 매해 다운타운에서 수요집회를 개최하는 등 미국사회 계몽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심지어 일본 총영사관을 찾아가 일본정부의 사과도 촉구했습니다. KA보이스는 위안부 결의안이 일리노이 주의회를 통과하는데 주 역할을 했습니다. 이어 시카고 시의회도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다니엘 비스 주 하원의원: 저항할 힘이 없는 여성들에게 가해진 흉한 전쟁범죄에 대해 알려야 합니다. 우리는 강한 비난을 제기하는 한편 공감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육적인 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들이 역사를 알도록 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그러나… 소녀상은 아직도 세우지 못했습니다.설치의 뜻을 미국사회에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습니다.

소녀상이 시카고 모처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 지난해 9월, 한국에서 공수된 이동식 소녀상이 시카고에 임시로 전시됐습니다.

한국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이 소녀상을 세워야 하는 이유을 설명합니다.

[윤미향 – 그 전쟁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여성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 여성들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때 침묵을 깨뜨리고 목소리를 냈던,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그 전쟁이 겪어왔던 참혹한 삶을 알게 해줬던 그 여성들의 그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역사,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미래 세대들은 그 여성들의 삶을 배우고 또 기억해서 (중략) 다른 사람들의 인권과 평화를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런 삶 그런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교육의 어떤 상징으로 소녀상도 또 그 여성들의 삶도 기억하고 만들어가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는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최소 8곳에 세워졌습니다.이 가운데 6곳이 공유지, 즉 공공장소입니다.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팍 공립도서관 – 2009년 9월 8일
뉴욕주 낫소 카운티 아이젠하워 공원 – 2012년 6월 20일
캘리포니아주 LA 가든 그로브 AR 갤러리 쇼핑몰 – 2012년 12월 1일
뉴저지주 버겐 카운티 해켄색 법원 – 2013년 3월 8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청사 공원 – 2014년 5월 30일
뉴저지주 유니온 시티 리버티 플라자 – 2014년 8월 4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St. 메리스 스퀘어파크 – 2017년 9월 22일
뉴저지주 포트리 컨스티튜션 공원 – 2018년 5월 23일

평화의 소녀상은 4곳에 세워졌습니다.
두 곳이 공유지, 다른 두 곳은 사유지에 자리합니다.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공립도서관 – 2013730
미시건주 사우스필드 한인문화회관 – 2014818
뉴욕주 뉴욕 한인회관 이민사박물관 – 20171013
조지아주 브룩헤이븐 블랙번 공원 – 20171019(이전)

미국에서 공공장소에 기념비와 조형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시와 관련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공청회가 열리기도 하며 시의회의 표결이 수반됩니다.

소녀상과 기림비를 설치한 모든 지역에서 한인 활동가들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해석하는 미국인들의 인식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 총영사관과 일본기업, 극우단체들의 집요하고도 조직적인 반대 로비였습니다.

미시건 디트로이트 인근 사우스 필드는 공립도서관 부지의 설치가 확정되었다가 일본 기업들과 일본 총영사관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고 결국 사유지인 한인문화회관에 소녀상을 세웠습니다.

[박선영 디트로이트 한인회장 – 일본 영사관에서 알고, 우리가 소녀상을 갖다 놓으려는 것을 알고 어디든지 갖다 놓으려고 해도 막는 거예요. 우리가 자리를 찾는데 2년 걸렸습니다. 문화회관이 있었어요. 일본사람들이 터치를 못 해요. 우리 땅에다 소녀상을 갖다 놓는데 자기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그래서 정말 눈물도 많이 흘리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뉴욕의 경우, 공공장소를 포기하고 이동식 소녀상으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김민선 전 뉴욕한인회장 – 뉴욕은 다양성, 많은 인종들이 모여서 공존하는 도시이기 때문에 어떤 정치적, 외교적 갈등이 생기는 이슈를 원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저희들이 센트럴 공원이라든지 야외 공간에 세우고 싶었지만 맨하탄 첼시에 있는 한인회관 안으로 저희들이 소녀상 건립을 계획을 수정한 겁니다. 움직일 수 있는, 살아있는 소녀상입니다. 그래서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

앞서 나열했듯이일본계의 조직적인 방해 공작을 뚫고 성공한 사례는 더 많습니다.한인 활동가들의 조직적인 활동과 정치력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뉴스매거진은 지난해 10월, 가장 최근에 소녀상을 세운 조지아주의 애틀란타로 향했습니다.

[박원정 – 미국 애틀란타 근교 브룩 헤이븐시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입니다. 일본의 집요한 공작을 물리치고 지난해 여름 이곳에 세워졌습니다]

신도시 브룩 헤이븐의 블랙번 공원. 소녀상은 교통량이 많고 멀리서도 잘 보이는 시의 공유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브룩헤이븐의 존 박 시의원, 김백규 소녀상건립위원장과 함께 소녀상 건립에 주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초기 단계부터 한일 양국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이슈로 접근하고 인종을 초월한 각계와 연대를 이뤄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존박 시의원: 초기부터 우리는 한일 양국의 문제가 아닌 인권과 정의 이슈로 부각시켰습니다. 다양한 민족, 사회 단체들과 연대를 이뤘습니다. 애틀란타의 호주인, 말레이시아인, 인디아인 등 민족 단체와 성 인신매매 근절 단체 등… ]

박 시의원에 따르면 일본계는 총력을 다해 소녀상을 무산시키려고 했습니다. 미국 정재계 지도자들을 찾아가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왜곡해 알렸고 부정적인 경제효과 및 사회적 영향을 경고했습니다.

반대가 강할수록 애틀란타의 소녀상 건추위는 연대를 강화하고 로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질문: 건립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존 박 시의원: 일본 총영사관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재계와 매우 견고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극복했냐하면, 우리 또한 그들과 같은 지도자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고, 한국 역사와 세계대전 역사를 제시하며 이 사안이 한일 양국뿐 아니라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과 나아가 오늘날 미국의 성 인신매매 이슈까지 포함한다는 것.]

소녀상은 브룩 헤이븐시의 중심 공원에 설치돼 있습니다. 주민들이 산책과 조깅을 즐기는 길목에 자리하며 주변환경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매해 수만명이 찾는 체리 블러섬 축제도 바로 이곳에서 열려 대중에게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존 암우드 은퇴 교수 – 소녀상은 역사를 상기시켜줍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압니다. 우리가 말하는 화해가 없었습니다. 일본이 전시 중에 행한 일들에 대한 반성이 없습니다.]

브룩헤이븐시의 소녀상 건립 선례는 시카고 한인들에게 교훈을 줍니다. 결국 한인들의 뜻과 노력만이 아닌 지역사회의 공감대와 정치적인 힘이 성사시킬 수 있다는 것.

시카고의 소녀상 건립사업은 매우 안일하게 접근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연대를 이룬 공동의노력이 아닌 소수의 사업이었습니다. 소녀상 설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한 도시는 없었고, 심지어 한인사회의 문화회관 조차도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현재 소녀상건립위원회는 근 백년 역사의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에도 제안한 상태, 그러나 교회 내외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한인교회나 문회회관 등 한인 사유지는 이 땅, 미국에 소녀상을 세우는 근본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박원정 질문: 시카고에 소녀상을 어떻게 세워야 된다고 보십니까]
[손식 KA보이스 대표: 저희가 소녀상을 왜 세우려고 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단지 한국과 일본의 문제가 아닌 미국 입장에서 바라보는 인권, 여권의 문제에서 이 부분들을 미 주류사회에 교육시켜 나가고 알려나가기 위한 그런 목적이었다. 그렇다라면 그것이 어디에 세워져야 되는가 이런 것들은 너무나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국 주류사회에 이것을 알릴 수 있는 그런 공간에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고 그런 것들을 교육해나가는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생각됩니다.]

미국에 소녀상을 세운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은 일본군 강제동원 위안부 역사가 한일 양국만의 문제가 아닌 동아시아 및 세계 전체가 풀어가야 할 과제이며 나아가 세계 각지에서 성노예로 짓밟힌 여성 인권의 회복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합니다.

그 활동이 한인 단체에 국한되지 않고 타 지역사회 단체, 미국 인권 단체까지 연대를 이룬다면 큰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의 유명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도 시카고 소녀상 건립을 지지하며 위안부 역사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뉴스매거진 질문: 시카고 한인들의 소녀상 건립을 지지할 것인가][제시 잭슨: 전적으로 지지한다. 인간 착취는 전쟁의 상처이다. 여성에 대한 성폭행은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다. 우리는 강제동원 위안부 피해자를 잊으면 안된다. 다시 발생하면 안될 일이다. 위안부 역사의 교훈은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다시는 일어나면 안되는 일입니다.]

한인들의 모금과 참여로 이뤄진 사업인 만큼 소녀상 건립위원회는 책임을 갖고 성과를 보여야 합니다. 조용히 숨기고 물밑에서 조심스레 진행할 일이 아닙니다, 소수가 아닌 연대, 협의체를 구성하고 힘을 결집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공청회를 열어 진행상황을 알리고 의견을 수렴해 함께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결코 사업을 시작했던 소수의 명예 사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범 커뮤니티, 나아가 인류애를 담은 인권의 가치로 함께 세워야 할 일입니다.

[클로징 – 많은 시카고 한인들은 이제 소녀상의 결실이 맺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세우며,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떻게 기릴 것인지 뚜렷한 의식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뉴스매거진 박원정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