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정 PD | neomusica@hotmail.com
입력: 2026.10.27 12:30pm
한국 전통춤의 원형과 계승, 현대적 재해석을 한자리에서 조명한 2026 대한민국 전통춤축제가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렸다.
이번 축제에는 국립무용단을 비롯해 강원특별자치도립무용단, 구미시립무용단, 청주시립무용단, 대전시립연정국악단, 서울시무용단, 목포시립무용단,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무용단 등 전국의 국공립 예술단체와 국가무형유산 전승 단체, 국립국악고등학교가 참여했다.
전통춤의 원형을 충실히 이어가는 작품부터 전통적 움직임과 음악을 오늘의 감각으로 재구성한 창작춤까지 다채로운 무대가 펼쳐졌다.
축제는 첫날 전통춤의 원형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재구성과 창작을 통해 전통춤의 확장 가능성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3일 첫 무대는 국립무용단의 ‘보듬고·고무악’이 장식했다. 살풀이 형식에 진도북춤과 승무의 북가락을 접목한 ‘보듬고’는 위로와 치유의 정서를 담았으며 ‘고무악’은 역동적인 북장단과 군무로 새로운 생명력과 에너지를 표현했다.
구미시립무용단은 ‘숨: 벽사와 해원’에서 처용무와 선살풀이춤을 결합해 액운을 물리치고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전통춤의 의미를 조명했다. 청주시립무용단의 ‘청풍풍류’는 ‘청화무’와 ‘청풍장고’를 통해 선비춤의 기품과 풍류장고의 흥겨움을 함께 선보였다.
국가무형유산 태평무전승회는 ‘한영숙제 박재희류 태평무’로 첫날의 대미를 장식했다. 한성준에서 한영숙으로 이어진 전승의 맥을 바탕으로 정교한 발디딤과 절제된 춤사위를 선보이며 나라의 태평성대와 안녕을 기원하는 태평무의 품격을 드러냈다.

24일에는 전통춤의 형식과 움직임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작품들이 무대를 채웠다. 국립무용단의 ‘귀향’ 중 ‘젊은 날의 초상’은 김성옥의 시 ‘귀향’에서 출발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첫사랑의 기억을 무용극으로 풀어냈다. 한국춤의 서정성에 연극적 서사를 결합해 개인의 기억과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대전시립연정국악단은 ‘꽃을 위한 산조춤’에서 산조의 음악적 정서를 바탕으로 삶에 대한 성찰과 자기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대풍류 승무·검무 합설’에서는 대풍류 음악에 승무와 검무를 결합해 전통춤의 절제미와 역동성을 한 무대에 담았다.
강원특별자치도립무용단의 ‘고동, 맥을 깨우다’는 김덕수제 설장구춤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설장구의 장단과 태평소 선율을 바탕으로 전통 농악의 에너지를 무대 위에 펼쳐내며 음악과 몸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호흡을 강조했다.
서울시무용단은 ‘미메시스’ 중 ‘교방무’, ‘한량무’, ‘소고춤’을 선보였다. 모방과 재현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전통춤의 본질을 탐색하면서 교방무의 고요함, 한량무의 풍류, 소고춤의 생동감을 각기 다른 움직임으로 형상화했다.

25일 마지막 날에는 전통춤의 원초적 에너지와 상징성을 탐색하는 무대가 이어졌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무용단의 ‘지맥동천(地脈動天)’은 전국 각지의 농악 가락과 무속 장단을 바탕으로 땅의 생명력과 공동체의 안녕을 표현했다. 쇠와 북의 울림에 역동적인 군무를 더해 전통 연희의 웅장함을 무대 위에 펼쳤다.
국립국악고등학교는 강선영의 작품을 지승환이 재구성한 ‘무당춤’으로 무속적 춤의 움직임과 음악을 선보였다. 경기도와 평안도 굿의 요소를 바탕으로 액운을 물리치고 개인과 공동체의 평안을 기원하는 무속춤의 의미를 담았다.
목포시립무용단의 ‘삼학 학춤’은 학의 유려한 자태와 절제된 움직임을 세 마리 학의 춤으로 형상화한 창작 신무용이다. 학이 상징하는 고고함과 장수의 의미에 현대적 해석을 더해 조화와 균형의 미학을 표현했다.
축제의 마지막은 국립무용단의 ‘사자(死者)의 서(書)’ 중 ‘제례’와 ‘삶의 여정’이 장식했다. 티베트 불교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망자를 애도하는 의식과 죽음 이후의 여정을 춤으로 풀어내며 삶과 죽음,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짚었다.
이번 축제는 전통춤의 보존과 창작이 서로 대립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태평무와 처용무처럼 전승의 맥락이 뚜렷한 작품에서부터 시와 철학, 치유와 공동체의 기억을 담은 창작춤에 이르기까지 전통은 다양한 방식으로 오늘의 무대에 되살아났다.
특히 전국의 국공립 예술단체와 전승 단체, 예술 교육기관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에서 전통춤의 계승을 특정 지역이나 세대의 과제가 아닌 공동의 문화적 자산으로 조명했다는 의미가 있다.
전통의 원형을 지키는 일과 새로운 시대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일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오늘의 관객에게 전통춤은 무엇이며, 그 춤의 생명력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사흘간의 축제는 전통춤이 과거의 유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잇는 살아 있는 예술임을 보여주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