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정 PD | neomusica@hotmail.com
입력: 2026.10.26 10:30am
성악가 사무엘 윤이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오페라 ‘라인의 황금’ 공연에서 알베리히 역으로 한국 관객을 만난다.
국립오페라단은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2029년까지 차례로 선보이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첫 작품인 ‘라인의 황금’은 오는 29일부터 내달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사무엘 윤과 바리톤 양준모가 알베리히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사무엘 윤이 알베리히 역할을 처음 맡은 것은 약 10년 전 미국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서였다.
기자는 10년 전 성악가 사무엘 윤의 알베리히 데뷔를 미국 시카고의 리릭 오페라에서 직접 취재했다.
괴팍하고 익살스러우며 욕심 많은 배역을 선 굵은 연기로 깊게 담아내 미국 관객들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고 시카고 평단의 찬사도 이어졌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음악감독 앤드류 데이비스 경은 사무엘 윤과의 공연 후 “사무엘 윤은 정말 훌륭한 예술가다. 그의 목소리는 알베리히 역에 완벽하게 들어맞을 뿐만 아니라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연기력이 정말 대단하다. 그 역할에 있어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다”고 극찬했다.
<자료: 뉴스매거진의 2018년 인터뷰>
사무엘 윤의 알베리히, 무엇이 특별한가
사무엘 윤에게 알베리히는 오랜 바그너 레퍼토리 경험 속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배역이다.
그는 세계적 명성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주역으로 출연하는 등 바그너의 작품을 수없이 노래해 왔지만 “알베리히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표현이 한층 넓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알베리히 캐릭터를 만난 경험은 자신의 내면에 여러 형태의 에너지와 색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전환점이었다.
“알베리히는 세상의 욕망을 좇아 사랑을 버리고 권력을 추구하지만 결국 자신이 얻으려 했던 권력마저 빼앗기고 무너지는 인물입니다”
사무엘 윤은 이 비극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그는 알베리히를 연기할 때 세상을 향한 풍자와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을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배신하고 살아가다가 결국 자신 역시 배신당해 처절하게 무너지는 과정이 이 인물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단순히 악역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사무엘 윤에게 오페라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예술이다.
“저 역시 세속적인 욕망을 마치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좇으며 살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궁극적으로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신앙을 통해 깨닫게 됐습니다. 사실 누구나 그런 시기를 겪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신앙이 깊은 크리스천이라 해도 세속적인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요.”
“젊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나이가 들고 인생의 경험이 쌓이면서 깨닫게 됩니다. 특히 무대에서 오랜 세월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면 그 안에서 많은 간접 경험을 합니다. 때로는 악역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선한 인물이 되기도 하면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무대 위에서 수많은 인간의 삶을 통과하며 자신을 발견해 온 사무엘 윤의 시선은 이제 또 다른 예술적 지평을 향하고 있다.
오랜 독일 활동 후 한국에 돌아온지 4년, 사무엘 윤에게 이번 공연의 의미는 세계적인 바그너 레퍼토리를 한국에서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세계 무대에서 축적한 예술적 경험을 국내 관객과 나누고 이를 통해 한국 관객과 예술적 공감대를 넓히는 데도 의미가 있다.
사무엘 윤은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년 시리즈의 개막 공연을 장식한다. 첫 작품 ‘라인의 황금’의 알베리히 역으로 10월 29일과 31일 무대에 오른다.
국립오페라 ‘라인의 황금’ 링크: https://www.nationalopera.org/cpage/show/showInfo/9425


<사무엘 윤의 무대 너머 이야기>
인터뷰 말미에는 이번 오페라 공연을 넘어 사무엘 윤이 바라보는 예술의 비전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 오페라 공연 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방향과 미래가 궁금했다.
오랜 독일 및 해외 활동 후 돌아온 그는 이번에 이 같이 말했다.
“새로운 인생이 이곳에서 시작됐고 이제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주저하지 않고 표현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이제는 그럴 만한 나이가 됐고 그동안 받은 것들에 감사하며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그 보답이 단순히 후학을 돌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만의 고유한 장르를 찾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지금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특히 힘주어 이야기한 것은 한국 예술의 미래였다.
그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각자의 장르 안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만나 협업할 수 있는 무대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악가와 작곡가뿐 아니라 미술가, 무용가, 연극인, 국악인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함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핵심은 한국의 정체성과 정서다. 한국어로 표현하고 한국인의 정서와 장단을 담은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 장르가 결합한다면 우리만의 독창적인 무대 언어를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러한 구상을 바그너가 추구했던 총체적 예술의 개념과 연결했다. 음악과 극, 철학과 시각예술이 하나의 무대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대형 오페라 극장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문화회관 등 다양한 공간이 창작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장소의 규모보다 예술가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고 관객과 만날 기회다.
사무엘 윤은 장르를 넘어선 협업이 한국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함께 담아내는 작품이 늘어날수록 국내 관객에게는 자국의 예술을 새롭게 경험하는 기회가 되고, 해외 관객에게는 한국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사무엘 윤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K-팝뿐 아니라 경복궁과 익선동 같은 장소를 찾는 이유에도 주목했다. 그들은 한국의 대중문화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역사와 전통,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해외 관객에게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는 예술적 콘텐츠가 충분한가. 그는 이 질문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봤다.
한국의 전통적 정서와 음악, 장단, 시각예술과 무용을 하나의 작품 안에서 만날 수 있다면 한국 관객에게는 문화적 자긍심을, 해외 관객에게는 한국 예술의 깊이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구상은 전통예술을 과거의 유산으로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전통을 현재의 창작 언어로 재해석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무엘 윤이 말하는 한국 예술의 가능성은 결국 협업과 창작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국적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가 그리는 미래는 한국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예술이 만나 새로운 무대 언어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세계와 소통하는 예술로 확장되는 것이다.
매우 활발한 국내외 무대 활동과 더불어 서울 음대에서 25명에 이르는 음악학도를 지도하는 교육자의 역할을 병행하는 사무엘 윤. 그가 앞으로 어떤 노래로 어떤 무대를 빚어내며 예술적 지평을 넓혀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