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사진: 박원정 PD | neomusica@hotmail.com
입력: 2026.10.14 8:15pm
인천시립합창단이 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2027 ACDA 초청 기념 연주회를 열었다. 정기연주회로선 제198회 행사다.
세계 합창지휘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ACDA(American Choral Directors Association 미국합창지휘자협회)는 내년 3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리는 내셔널 컨퍼런스에 인천시립합창단을 헤드라이너로 공식 초청한 바 있다.
인천시립합창단은 ACDA의 초청을 기념하는 무대로 이번 연주회를 기획하고 한국 작곡가들의 세계 초연 작품 3곡을 포함해 총 12곡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총 1시간 40분 동안 진행된 연주회에서 제1부는 한국 작곡가들의 현대 한국 합창곡을, 제2부는 현대 서양 무반주 합창곡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한복을 단복으로 차려입은 인천시립합창단은 우효원의 세계 초연곡 ‘정중동’으로 막을 올렸다. 약 22분 길이의 5악장으로 이뤄진 곡에서 여백, 한 획, 줄타기, 해원, 어울림 등 다섯 가지 ‘한국적 몸짓’을 새로운 합창의 언어로 풀어냈다.
작곡가 우효원은 뉴스매거진에 “고요함 속에 내재된 움직임과 에너지, 절제 속에서 드러나는 강렬함을 합창의 소리와 공간적 움직임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곡을 소개했다.
두 번째 곡은 작곡가 조혜영이 세련되게 편곡한 가곡 ‘가고파’였다. 인천시립합창단은 서정적인 선율과 정교한 합창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애틋한 정서로 깊이 있게 전했다.
박정규의 신곡 ‘새야 새야’에서 합창단은 익숙한 전통 선율의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 합창의 다채로운 화성과 음향을 회화적으로 풀어내며 관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람 소리와 새소리를 목소리로 표현한 대목은 음악적 여운을 극대화했다.
대금과 피리, 포 핸즈 피아노와 함께한 조혜영의 ‘금잔디’에서 인천시립합창단은 생명력이 넘치는 찬란한 봄의 이미지와 무덤가의 금잔디를 대조적으로 표현하며 임을 잃은 슬픔과 외로움을 더욱 깊게 환기했다.
작곡가 조혜영은 뉴스매거진에 “한국적이면서도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연주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는데, 인천시립합창단의 연주는 이 같은 기획 의도를 충분히 살렸다.
제1부의 마지막 곡은 지혜정의 ‘디여라!’였다. 인천시립합창단은 세계 초연으로 선보인 이 작품에서 4명의 단원 솔리스트와 함께 뱃사람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노동요의 생동감을 펼쳐냈다. 구호와 감탄사, 추임새에 발구름과 손뼉을 더한 극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쇼 피스’(show piece)로 제1부의 대미를 힘있게 장식했다.

인터미션 후 제2부에서 인천시립합창단은 턱시도와 레드 드레스를 맞춰입고 서양의 무반주 합창곡 5곡을 암보로 연주했다.
현대음악의 대가 펜데레츠키의 ‘Agnus Dei’를 필두로 레벤테 죈죄시의 ‘De Profundis’와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Somewhere’(로버트 에드저톤 편곡), 목소리로 타악기 소리를 만들고 다채로운 코레오그래피가 돋보인 ‘Dance!’(Robert T. Gibson 작곡), 강렬한 리듬과 유머러스한 표현이 부각된 ‘Water Fountain’(크리스토퍼 풀턴 편곡)을 선보였다.
앙코르로는 ‘Ol’ Man River’(Derric Johnson 편곡)와 ‘못 잊어’(조혜영 곡)로 관객의 갈채에 답했다. 합창단은 이 곡들도 악보 없이 외워서 연주했다.
윤의중 음악감독은 연주회 말미에 “내년 3월 전 세계 지휘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연주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5개월 정도 남았는데 더 갈고닦아서 연주를 잘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성원을 당부했다.
인천시립합창단은 이번 연주회에서 한국적 음악에서 세계의 합창음악으로 이어지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걸어온 음악적 여정과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만나는 자리’라는 의미를 더했다.
인천시립합창단은 1981년 창단된 인천광역시의 대표적인 전문 합창단으로 1995년 윤학원 전 예술감독과 함께 재창단하며 음악적 도약을 이뤘다. 세계합창연맹(IFCM)과 미국합창지휘자협회(ACDA) 내셔널 컨퍼런스 등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국 합창음악의 예술성과 독창성을 세계에 알려왔다.
인천시립합창단의 첫 ACDA 연주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예술감독 윤학원 교수가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열린 ACDA 창립 5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 초청받아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18년 후, 그의 아들이자 제8대 예술감독인 윤의중 교수가 같은 합창단을 이끌고 다시 ACDA 무대에 서게 된다. 윤 감독은 2년 전 신시내티에서 열린 ACDA 내셔널 컨퍼런스에도 국립합창단과 함께 초청된 바 있다.
이번 기념 연주회는 내년 미국에서 펼쳐질 인천시립합창단의 ACDA 무대를 미리 만나는 자리이자 한국 합창음악의 예술성과 가능성을 세계 합창계에 다시 한번 각인할 여정의 출발점이 됐다.
박원정 PD | neomusica@hotmail.com

윤의중 예술감독/상임지휘자 인터뷰
– 연주회를 마친 소감은?
이번 연주는 곡을 더 좋은 작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수정했지만 오늘 연주를 통해 더 발견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연주를 다시 들어보고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작곡가와 우리 합창단이 의도한 바가 더욱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하면서 음악으로 온전히 표현할 수 있도록 다듬는 과정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연주를 바탕으로 작품을 다시 수정해 한층 완성도 높은 곡으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 ACDA는 합창단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미국합창지휘자협회 ACDA는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합창계의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전문 단체입니다. 세계 각국의 합창 관계자들이 모여 다양한 연주를 접하고 새로운 레퍼토리와 세계 합창 음악의 흐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2009년에는 저의 아버지인 윤학원 교수가 인천시립합창단을 이끌고 참가해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당시 20~30대였던 일부 현 단원들이 이제 40~50대가 되어 다시 이 무대에 함께한다는 점에서도 남다른 감회를 느낍니다.
– 이번 레퍼토리에 영어와 라틴어 가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한국 프로 합창단에도 어려운 외국어 딕션을 어떻게 다듬고 계십니까?
오늘 롯데콘서트홀의 음향 특성상 자음이 다소 선명하게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곡에 대한 익숙함이 더해지면 개선될 여지도 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갈 계획입니다.
외국어 합창에서 중요한 것은 모음과 자음의 딕션입니다. 특히 자음은 가사의 의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음악적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리드미컬하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강세와 어미의 종성 자음까지 음악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해외 무대에서도 현지 관객들이 가사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음의 위치와 강세, 종성의 처리까지 세밀하게 점검하고 연습해 나갈 계획입니다.
– 인천시립합창단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제가 국립합창단을 비롯해 여러 합창단을 지휘해 왔지만, 인천시립합창단은 세밀한 피아니시모(아주 여린 소리)와 루바토(유연한 빠르기 변화) 같은 음악적 표현을 빠르게 포착하고 섬세하게 구현하는 집중력이 돋보입니다. 작은 셈여림의 변화부터 템포의 미묘한 유연성까지 폭넓은 표현력을 갖춘 합창단입니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앞으로 더욱 깊이 있고 완성도 높은 합창 사운드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우효원 작곡가 인터뷰
– 작품 ‘정중동’ 초연을 마친 감회가 어떻습니까?
인천시립합창단과 함께 작품을 고민하고 빚어가던 지난 시절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오랜 시간 음악을 함께해 온 좋은 동료들과 다시 뜻깊은 작업을 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는 무대였습니다. 내년 ACDA 세계 무대에서 선보이기까지 작품을 계속 다듬고 발전시켜 나갈 생각입니다.
– ‘정중동’을 통해 세계 음악가와 관객들에게 무엇을 소통하고 싶습니까?
‘정중동’은 한국의 전통적인 미의식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고요함 속에 내재된 움직임과 에너지, 절제 속에서 드러나는 강렬함을 합창의 소리와 공간적 움직임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한국적인 정서와 미학이 문화와 언어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음악가와 관객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경험으로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 ACDA 초청 연주에서의 작품 발표가 작곡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CDA는 세계 합창음악의 최신 흐름을 접하고, 세계적인 합창 지휘자와 음악가들이 교류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2009년 ACDA 창립 50주년 기념 무대에서 윤학원 선생님이 이끌던 인천시립합창단이 제 작품들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8년 만에 윤의중 지휘자가 다시 인천시립합창단을 이끌고 초청받고, 이번에도 제 작품이 주요 레퍼토리로 함께한다는 것은 작곡가로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두 세대의 지휘자와 함께 한국 합창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세계 무대에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뜻깊고 기대됩니다.
– 현대적 합창곡을 쓰고 연주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저는 상상력을 통해 합창이 가진 표현의 가능성을 넓히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소리와 장면을 음악으로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발성이나 리듬, 공간의 활용 등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상력이 실제 연주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는 음악으로 구현되는가입니다. 작곡가의 상상이 연주자들의 해석과 표현을 통해 살아나고, 관객에게 새로운 음악적 경험으로 전달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곡가 조혜영 인터뷰
– 오늘 연주회에 대한 소감은?
ACDA 프리 콘서트의 성격상 한국적인 합창곡을 선보이고자 하는 지휘자의 고민이 느껴지는 연주였습니다. 작곡가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준 높은 외국 작품들도 좋지만 한국 합창곡이 조금 더 많이 포함됐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작곡가로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 자신의 곡 ‘금잔디’에 담고자 하신 것은 무엇인가요?
가신 임의 무덤가에 자라난 금잔디의 풍경을 목가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시인이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라고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봄의 기운이 생동하는 풍경을 담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신 임을 그리워하는 슬픔이 함께 느껴지도록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작곡가로서 ACDA와 참가와 바람
2023년 ACDA 내셔널 콘퍼런스에서 국립합창단이 윤의중 감독님의 지휘로 제 편곡 작품 ‘세노야’를 연주했습니다. 이번에도 원래는 윤의중 감독님께서 작품을 위촉해 주셨는데, 제가 다른 작업 때문에 새로운 곡을 써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기존 작품들로 참가하게 됐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ACDA 무대인 만큼 일회성으로 연주되고 끝나는 곡이 아니라 한국적이면서도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연주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